CREATIVE ISSUE

Subject : [CCI 컨설턴트가 말하는] 나는 직장인인가? 디자이너인가? (산업의 흐름을 따라가는 디자이너 채용트렌드) 18-09-28 09:36

본문

[CCI 컨설턴트가 말하는] 나는 직장인인가 디자이너인가?
(부제: 산업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디자이너 채용)
 
산업디자이너는 창의력과 예술적 감각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그러나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상업적 디자인을 한다는 점에서 예술가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채용은 산업의 흐름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삼성전자가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 것은 1996년이다. 디자인을 경영 전면에 내건 최초의 시도였다. 2006년에는 삼성그룹 차원의 디자인경영전략을 내세웠다. 그 후로 많은 국내 기업들이 너도나도 디자인을 화두로 삼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산업 전반에 걸쳐 디자인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업마다 디자인이 경쟁력이라며 지겨울 정도로 외쳐댔다. 대학에서는 디자인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정원을 늘렸고, 졸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하드웨어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들은 물론, 서비스 중심의 기업들도 조직 내부에 디자인 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자체 브랜드를 제작하고, 서비스를 디자인하기 위해 디자이너 조직을 만들며 채용을 리드했다. 현대카드가 그 선두에 서있었던 유명한 예가 될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자동차 디자이너 이외에 UX, 브랜드디자이너 등 다양한 디자인조직을 만들었다.
제조업, 서비스 산업에 이어 드디어 유통업까지 디자인 전쟁에 가세했다. 타 기업의 상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던 유통사들 사이에 자체 상품을 만드는 붐이 일어났다. 신세계 이마트에서 피코크PB를 론칭하고 성공시킨 것이 그 신호탄이 되었다. 2013년 무렵부터는 경쟁 유통기업들도 PB브랜드 제작 대열에 합류했다. 주로 식품 쪽에서 PB가 활성화되면서, 식품 패키지 디자인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조직 내부에 적게는 5명 많게는 30명의 그래픽 디자이너 조직이 형성되었다. 식품 패키지 디자이너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캔진열

최근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중국과 동남아에서 한국 화장품이 홈런을 쳤다. 화장품 회사가 편의점 수만큼 많아졌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 인기만큼 화장품 패키지 디자이너가 필요하게 되었고, 시장에서 순식간에 화장품 디자이너의 수요가 늘어났다. 거기에 한국의 화장품 디자이너를 중국에서 스카우트 하는 일까지 빈번해지면서 인력 시장에 화장품 패키지 디자이너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화장품

현재 삼성전자에만 1500명의 디자이너가 있다고 하고, LG전자도 그에 질세라 엄청난 수의 디자이너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을 기점으로 10년 넘게 지속되어 오던 디자인 채용 경쟁이 둔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제품 디자이너에서, 브랜드 디자이너, 식품 패키지 디자이너, 화장품 디자이너, 디지털 디자이너 등으로 이어지며 시장을 들썩이게 하던 트렌드의 흐름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함께 매출이 감소하자 기업들은 조직을 슬림화하기 시작했다. 디자이너가 우선 감원의 대상이 되었고, 기업에 안착한 디자이너들은 불리한 시장 상황을 감지했다. 기업 내부의 디자이너들은 안정적 조직을 떠나려 하지 않고, 결국 조직은 정체되고 있다.
그래도 디자이너가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는 경력 디자이너를 채용해 효율을 높이려고 한다. 디자인 크리에이티브가 뛰어난 사람을 골라보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경쟁사 이동은 리스크가 크고, 타 산업에 있던 디자이너는 해당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역량들로만 채워진 ‘직장인’이 많다.

DECISION

취업자들 입장에서는 어떨까? 대학은 디자인 관련 학과를 최대로 늘려놓았고, 해마다 점점 더 많은 디자이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채용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업계에 첫 발을 내딛는 산업디자이너는 어떻게 커리어를 만들어 가야할까?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으로 입사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유형일 것이다. 여러 가지 통계가 있겠지만 대부분 대기업이 연봉도 많고, 행복지수도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이 통계가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도 통하는 것인지, 직무별, 직급별로 나누어서 볼 때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대기업 인하우스팀에서 일하는 것이 안정적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인하우스팀에서의 근무는 디자인 자체의 역량개발에 집중할 시간이 다소 부족할 수 있다. 디자인 업무 말고도 회사가 요구하는 다른 역량개발에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의 경우, 디자인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신참 디자이너들은 대개 디자인 스튜디오(에이전시)를 우선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크리에이티브한 능력보다는 논리적, 이성적 면이 낫다고 생각한다면 기업의 디자이너로 입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 졸업자의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할 수 있다 없다를 논하기 전에 연봉이 높은 대기업으로 올인하는 것이 정답.

문 작게

물론 대기업에 지원해 바로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대기업은 아주 좋은 ‘직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라면, 혹은 디자이너를 평생 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라면,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시작하는 것을 옵션에서 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대학 졸업 후, 실제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디자인은 무엇이며, 아트와 산업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졸 신입 디자이너의 취업 시장은 이미 한껏 문턱이 높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돌파구를 찾기도 여의치 않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전문가’이며 ‘직업’으로 우대받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사실을 다시 상기하고 스스로를 ‘ 프로페셔널한 디자이너’로 격상시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by Terry